장흥 보림사 남·북 삼층석탑 및 석등: 통일신라 불교 건축의 정수

통일신라 석탑 건축의 정수

깊은 산중, 가지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 보림사는 통일신라 시대 헌안왕 4년(860)에 체징 스님이 창건한 사찰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불교의 성지로 자리매김하며 수많은 불교 문화재를 품어왔습니다. 그중에서도 보림사 남·북 삼층석탑과 석등은 통일신라 시대 석탑 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는 국보급 문화재로 손꼽힙니다.


보림사 삼층석탑과 석등
출처: 국가유산청



역사 속에 피어난 불교 건축의 꽃

보림사는 창건 이후 꾸준히 번창하여 20여 동의 건물을 갖추었으나,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는 비극을 맞았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절 앞뜰에 나란히 서 있는 두 기의 삼층석탑과 한 기의 석등은 굳건히 자리를 지키며 통일신라 시대 불교 건축의 아름다움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남북으로 마주한 두 탑과 석등의 조화

남북으로 마주한 두 석탑은 구조와 크기가 거의 동일하며,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얹은 전형적인 통일신라 석탑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기단은 위층이 크고 아래층이 작으며, 위층 기단의 맨 윗돌이 매우 얇아 균형미를 더합니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 쌓았으며, 각 층 몸돌에는 모서리기둥을 새겨 입체감을 살렸습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계단형으로 5단씩이고, 처마는 기단의 맨 윗돌과 같이 얇고 평평하며, 네 귀퉁이가 심하게 들려 있어 윗면의 경사가 급해 보입니다. 탑의 꼭대기에는 여러 개의 머리장식들이 차례대로 가지런히 올려져 있어 웅장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을 자아냅니다.

석등 역시 신라 석등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네모꼴의 바닥돌 위에 연꽃무늬를 새긴 8각의 아래받침돌을 얹고, 그 위에 가늘고 긴 기둥을 세운 후, 다시 윗받침돌을 얹어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을 받쳐주도록 하였습니다. 화사석은 8각으로 4면에만 창을 뚫어 놓았고, 그 위로 넓은 지붕돌을 얹었는데 각 모서리 끝부분에 꽃장식을 하여 화려함을 더했습니다. 석등의 지붕 위에는 여러 장식들이 놓여 있어 전체적으로 안정감 있고 우아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완벽한 형태와 귀중한 자료 가치

보림사 석탑과 석등은 모두 완벽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특히 탑의 머리장식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예가 드물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탑 속에서 발견된 기록에 의해 석탑은 통일신라 경문왕 10년(870) 즈음에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으며, 석등도 같은 시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통일신라 불교 건축의 특징과 의미

보림사 석탑과 석등은 통일신라 시대 석탑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균형 잡힌 비례와 간결한 조형미, 그리고 화려한 장식은 당시 불교 건축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또한, 석탑은 불교의 우주관을 반영한 상징적인 건축물로, 부처님의 진리를 향한 숭고한 정신을 담고 있습니다.


역사적 배경과 문화적 가치

통일신라 시대는 불교가 국가의 종교로 자리매김하면서 불교 문화가 크게 발전했던 시기입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보림사 석탑과 석등은 불교 신앙과 예술이 조화를 이룬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또한, 보림사는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를 거치면서도 꾸준히 번성하여 많은 문화재를 남겼습니다.


보존과 활용

보림사 석탑과 석등은 우리나라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서 후손들에게 잘 보존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정기적인 보수와 관리가 필요하며, 더 나아가 일반인들에게 이러한 문화재의 가치를 알리고 널리 공유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론

장흥 보림사 남·북 삼층석탑과 석등은 통일신라 시대 불교 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는 국보급 문화재입니다. 완벽한 형태와 아름다운 조형미를 갖춘 이들 석탑과 석등은 불교 문화의 역사와 가치를 되새기게 합니다. 후손들에게 이러한 문화유산을 잘 물려주기 위해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