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과 인간에 얽힌 전설
공주 고마나루는 금강과 연미산을 포함한 무령왕릉 서쪽으로 펼쳐진 낮은 언덕과 금강변 나루 일대로, 공주지역의 태동지이자 곰과 인간에 얽힌 전설이 있는 유서 깊은 명승지입니다. 이곳은 백제 문주왕이 웅진으로 천도하던 교통로였고, 나당연합군의 장군 소정방이 백제 공격을 위해 금강을 거슬러와 주둔했던 역사적 장소입니다. 또한, 백제 멸망 후에는 웅진도독부가 설치되었던 곳으로서 백제 역사의 중심무대이자 국제적 교통의 관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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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나루의 역사적 배경
고마나루는 공주의 옛 지명으로서 ‘고마(固麻)’는 곰의 옛말로 한자로 ‘웅진(熊津)’이라 불렸습니다. 신라 신문왕 때는 웅천주(熊川州), 경덕왕 때는 웅주(熊州)라 하였으며, 고려 태조 때(940년) 공주(公州)로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곳은 백제 문주왕이 웅진으로 천도하던 교통로였고, 나당연합군의 장군 소정방이 백제 공격을 위해 금강을 거슬러와 주둔했으며, 백제 멸망 후에는 웅진도독부를 설치하였던 곳으로서 백제 역사의 중심무대이자 국제적 교통의 관문이었습니다.
웅진단과 국가 제사 공간
고마나루는 금강의 수신(水神)에게 제사를 올리던 웅진단(熊津壇) 터가 남아있는 등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국가의 제사 공간이었습니다. 이곳은 서민들의 생활터이자 물길로서 민중의 애환이 짙게 서려 역사적 가치가 큰 곳입니다. 웅진단은 국가에서 주관하여 제를 지내던 중요한 제단으로,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고마나루의 전설
고마나루에는 처녀곰과 나무꾼 총각에 얽힌 아름답고 슬픈 전설이 전해집니다. 고마나루 북쪽 연미산 중턱에는 전설 속 곰이 살았다는 곰굴이 고마나루를 내려다보고 있으며, 마을에서는 곰의 원한을 풀고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하여 나루터 인근에 곰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왔다고 합니다. 이 전설은 곰과 인간의 사랑 이야기로, 곰이 나무꾼을 사랑하여 두 아이를 낳았으나, 나무꾼이 도망가자 곰이 슬픔에 빠져 아이들과 함께 금강에 몸을 던졌다는 이야기입니다.
고마나루의 경관
고마나루는 백제 역사의 중심에 있던 곳으로 역사적 가치가 클 뿐 아니라 금강변에 넓게 펼쳐진 백사장과 450여주의 솔밭이 금강과 연미산과 함께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이곳은 역사 문화적·경관적 가치가 뛰어난 경승지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입니다. 특히, 금강의 아름다운 풍경과 연미산의 자연미술공원이 어우러져 방문객들에게 힐링의 시간을 제공합니다.
고마나루 방문 정보
고마나루는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공주종합터미널에서 101번이나 125번 시내버스를 타고 공주문예회관까지 이동 후 도보로 목적지까지 이동할 수 있습니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대전-당진 고속도로 공주IC를 통과하여 공주IC 삼거리에서 우회전 후 직진하면 도착할 수 있습니다.
고마나루는 역사와 전설이 어우러진 명승지로, 백제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이곳을 방문하여 고마나루의 아름다운 경관과 역사적 가치를 직접 체험해 보세요.